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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다/메모하다

절교 - 전윤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3. 14. 17:56




이제 내가 죽을 만큼 외롭다는 걸 아는 자는 없다
그대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짐을 챙긴다
밖으로 통하는 문은 잠겼다 더 이상
좁은 내 속을 들키지 않을 것이다
한잔해야지
나처럼 보이는 게 전부인 사람들과
정치를 말하고 역사를 말하고 비난하면서
점점 길어지는 밤을 보내야지
한 재산 만들 능력은 없어도
식구들 밥은 굶지 않으니
뒤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변변치 않은 자존심 상할 일도 없다
남들 앞에서 울지만 않는다면
나이 값하면서 늙어간다 칭찬 받고
단 둘이 만나자는 사람은 없어도
따돌림 당하는 일도 없겠지.
멀 더 바래
그저 가끔 울적해지고
먼 산 보며 혼잣말이나 할 테지
이제 내가 죽을 만큼 아프다는 걸 아는 자는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렇다. 외면 받는다는 말이다. 젊기에 빛나던 그런 것들은 조금씩 사라져가고, 이제 누군가는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에게 어떤 권력이 없는 이상, 이젠 내가 매력적이어서 나를 찾을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전처럼 말을 걸었다가, 손 내밀었다가, 얼굴 붉힐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가장 쉬운 방어 기제다. 굳이 아직 젊다고, 아직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소리칠 필요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면서, 천천히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을. 무대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주연이 아닌 뒷켠의 조연이라고 해서 서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 자리는 예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다른 젊은 이들이 채울 자리이므로.



여전히 나에게 좋아하는 것이 있고,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이면 족하다. 청춘을 꿈꾸지도 구걸하지도 않는다. 희망을 가지라는, 할 수 있다는 달콤한 포장이 먹힐 나이도 멀어져 간다.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벗어났으니 차라리 자유롭다. 여전히 내가 꿈꾸는 것은, 살아가면서, 굳세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일 뿐.



굳세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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