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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혼자예요? - 반디앤루디스 메일에서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3. 20. 18:03

왜 혼자예요?


사회학자 한병철은 그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 스스로 질문에 직면하게끔 합니다. 이 사회 구성원이 보편적 혹은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추상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사유하길 권하죠. 이를테면, 그의 저서 『심리정치』에서는 ‘자유’를 화두로 던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다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마땅히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병철은 개인의 자유를 통해 실현하는 것은 결국 자본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자유의 새로운 의미에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하죠.

자유롭다는 것은 본래 친구들 곁에 있음을 의미한다. 인도게르만어에서 자유Freiheit와 친구Freund는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자유는 근본적으로 관계의 어휘다. 사람들은 좋은 관계 속에서, 타인과의 행복한 공존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한병철, 『심리정치』, 문학과지성사, 2015)

자유와 친구라는 단어를 함께 바라보다가 얼마 전 한 갤러리에서 보았던 전시가 생각났습니다. < 당신의 친구, 대화와 협업 >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일종의 참여형 전시입니다. 전시 기간에는 수시로 열리는 공연 형태의 대화와 협업에 참여할 수 있죠.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한 아티스트 최태윤은 갤러리에서 이루어지는 ‘친구 관계’의 주선자이기도 했습니다. ‘친구’는 긍정적인 관계에서 예술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경험케 하는 중요 소재가 됩니다. < 당신의 친구, 대화와 협업 >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 했던 지점은 『심리정치』에 표현된 ‘자유로움’ 곧, ‘친구들 곁에 있음’ 아닐까요? 자본에 의지하지 않아도 실현될 수 있는 개인의 자유 말이죠.

최근, 미국에서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생산하는 사람, 주변의 사물을 고치고 만드는 이들을 가리켜 메이커(maker)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어울리기 위해 ‘메이커페어’를 엽니다. 『제로 투 메이커』의 저자 데이비드 랭은 메이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DIT(Do-It-Together)라고 강조합니다.

초창기 DIY는 지하 작업실에서 씨름하는 외루운 발명가나 맥가이버 같은 척척박사 이미지를 형성했다. (…) 하지만 메이킹은 다른 사람을 찾는 기술이었다. 가르쳐줄 사람을 만나고, 동호회를 만들거나 소규모 그룹에 합류하고, 낯선 이와 협력하며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시작해야겠다는 동기만 있다면 누구나 DIT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랭, 『제로 투 메이커』, 한빛미디어, 2015)

친구, 대화, 협업. 삼요소를 갖춘다면, 노동은 창작 활동이 될 수 있을까요? 창작은 곧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심리정치』를 읽고 자유의 위기를 느꼈다면, 부디 자유라는 것에 관하여 깊게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했을 때 누가 함께 할 수 있고, 어째서 함께여도 자유로울 수 없는지, 혹은 왜 혼자 할 것인지. 끊임없이 자유에 대하여 사유하시길.

자본이 결코 착취할 수 없는 자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한병철은 말한다. “바로 사유야말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한병철, 『심리정치』, 문학과지성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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