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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취생몽사

좋아한다고, 같이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7. 9. 13:09

1. 옛날 자료를 찾을 일이 있어서, 백만년만에 들어간 싸이월드 미니홈피 방명록에서, 백만년만에 전해진 비밀 편지를 받았어. 그 사이 우리는, 인사도 하지 않고 두어번 스쳐지나갔는데, 벌써 시간이 그만큼 흘렀는데, 당신 편지를 나는 이제야 받았지. 왠지 웃음이 나더라.


2. 빠에 들어갈 땐 항상 인사를 해. 인사는 언제나 하이 파이브. 기왕이면 큰 소리가 나는 것이 좋아. 그건 내가,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신호. 출빠를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야.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밝게 웃으면서 하이 파이브. 그건 당신과 내가 친구라는 이야기지. 

가끔 누군가는 인사를 씹어버려. 마치 웃기다는듯 위아래로 스캐닝 하고는 고개를 돌리지.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아. 나도 아는 척 안해도 될 사람이 하나 생겼을 뿐이니까. 말했잖아. 인사는 당신과 내가 친구라는 이야기지.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란 이야기야.


3.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야. 사람들이 말도 안돼-하고 생각 하는 것에도 의미를 붙이곤 하지. 어떤 이유에서건 춤 신청을 거절한 팔러에겐 다시 신청안해. 정말 피곤한 건지 날 싫어하는 건지 모르니까. 미인한 일이 있거나 고마운 일이 있다면, 뒤늦게라도 사과하고 고맙다고 말해. 그러니까...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해. 

그래서 내겐, 빠에 들어가서 처음 춤을 추는 사람과 마지막 춤을 추는 사람은, 모두 의미가 있어. 늘상 그러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그만큼은 좀 더, 당신이 내게 가깝다는 의미야. 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땐 마무리를 짓지 않아. 다음번에 추자고 팔러가 말한다면 다음까지 기다려. 플로어에 서서 당신을 부른다면, 귀찮으니까 니가 오라는 의미가 아냐. 무대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내 앞에 등장해 달라는 의미야.

...그래 맞아. 나, 꽤 까다로운 사람이야.


4. 좋아한다고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아니지. 맘에 드는 사람과는 언제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 내가 빠에 들어갔을 때 그녀가 나가기도 하고, 내가 쉬려고 할 때 갑자기 그녀가 춤을 신청할 때도 있어. 정말 다리가 아픈데 억지로 웃으며 춤을 출 때도 있어. 춤 신청을 거절하는 법 같은 건 배우지도 못했고, 배울 생각도 없으니까.

아아, 그래. 가끔 기적처럼 만난 날도 있었어. 내가 빠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네가 문을 열고 들어왔지. 그리곤 내 팔을 잡았어. 그 순간만큼은 정말 똑똑히 기억해. 네가 처음 나에게, 가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같이 춤을 추다, 빠밖으로 나왔어. 눈이 많이 내렸던 그 밤, 그 추운 날, 둘이 밤새 홍대앞을 돌아다녔던 기억. 오뎅빠에 갔다가 해장한다고 다시 설렁탕을 먹고, 네가 집에 내려가야 한다며 날 끌고간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첫 차가 오기를 함께 기다렸던 그 아침.


5. 그 새벽,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내가 그렇게 말했어.

이런 나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어? 

그 때, 니가 말했어.

내가.

분명히, 네가, 그렇게 말했어.



6. 좋아한다고, 항상 같이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아니지. 나 같이 까다로운 사람에게, 그런 기적은 두 번 다시 허락되지 않을 지도 몰라. 그래도 그때, 나는, 너의 그 한 마디에, 내 삶이 용서받는 기분이었어. 그래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 우리는 이제, 서로 모르는 사람이지. 두 번 다시 인사할 일은 아마 없을 거야. 그래서 정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


너에게 하는 말이 아냐. 백만년만에 알게된 너의 비밀댓글에다 대고 하는 말이야. 우리는 이제, 서로 모르는 사람이니까. 인사도 하지 않고 몇번씩, 서로 지나쳤던 사람이니까. 그래서 나도 그냥, 비밀댓글로 답글을 달았어.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고. 그러니까 이젠 그냥,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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