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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취생몽사

삶은 사랑보다 오래 지속된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1. 20. 02:57



1. 대학 다닐때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나는, 5학년부터는 내내 원고 써서 먹고 살았다. 그렇게 따지면... 굉장히 일찍, 그리고 오래 글로 먹고 살았던 셈이다. 대학을 8학년까지 다녔으니까.


그때 여자친구와 헤어지던 날도, 다음날이 마감이었다. 결국 학교 동아리방에서 원고를 쓰며 밤을 지샜다. 내 나름대로 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내 모습을 봤던 후배가 나중에 얘기해줬다. 


"형 그때, 엉엉 울면서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고. 


... 쪽팔려서 나도 머릿속에서 삭제해버린 기억을. 후배가 친절하게 되새겨주더라.


2.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온 날 밤, 조용하게 숨을 거두셨다. 하필 원고 마감이 3개가 겹쳤다. 꾸역꾸역, 글을 쓴다.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친척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도울 일 생기면 돕다가, 자료를 찾고, 이메일을 체크하고, 태블릿PC로 이런 저런 것들을 정리한다. 


방금 마지막 원고를 마쳤다. 새벽에 발인이다. 발인이 끝나면 방송하러 가야한다. 마치 소작농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뜻대로 미룰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하기사, 약속은 늦어도 마감은 지키면서 살아왔다. 어차피 내 인생, 휴가란 것은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거다. 그게 내가 선택한 삶이다.


삶은 사랑보다 오래 지속된다...


3. 당신 이승에서의 마지막날, 당신 손 붙잡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시간이 있어서, 그래도 좋았다. 아버지 입원하셨던 병실, 혼자 찾아와 멀뚱히 지키고 있었던 당신이 떠올라서, 부끄럽게 입을 놀렸다.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되서 다행이다.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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