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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청탁' 사건의 아주 건조한 시나리오 - 진중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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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청탁' 사건의 아주 건조한 시나리오 - 진중권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3. 3. 01:02

한편, ‘굳이 이 사건을 폭로했어야 하냐’는 물음엔 가치관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 (1) 판사가 자신의 부인에 관해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스캔들이다. 사법정의를 이는 공익적 관점에서 충분히 폭로할 가치가 있으나, (2) 인사 불이익을 당한 것도 아닌데 미리 사건을 공개함으로써 취재원을 난처한 처지로 몰아넣을 필요가 있었는지는 한번 따져볼 만한 일이다. 당신은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일부 언론에서는 박은정 검사의 허락도 없이 성급하게 이 사건을 “양심선언”으로 규정했다. 물론 백혜련 전 검사의 말대로, 박 검사의 성품상 꼭 해야 할 상황이었다면 기꺼이 양심선언을 했을 분이지만, 그것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 그 성급한 규정이 혹시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은 욕망의 산물이 아니었는지 살필 일이다. 언론의 임무는 권선징악의 소설을 쓰는 데에 있지 않다.

‘세상’은 흑백이 아니라 일련의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실’에는 늘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다. 그러니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기란 어렵다. 그럴 때에 세상을 명확히 선악(아군과 적군)으로 갈라주고, 구멍 난 사실들의 틈을 허구로 메워 전체상을 보여주는 매체에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아마 나꼼수라는 매체가 가진 매력이자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어떤가?

아군은 내 생각만큼 착하지 않고, 적군은 내 상상만큼 악하지 않다. 현실은 매끄럽게 이어지는 서사가 아니라 여기저기 구멍이 난 파편적 보도다. 팩션으로 전달되는 폭로 중에서 ‘사실’은 보도로 믿고, ‘허구’는 오락으로 즐길 일.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팩션’을 통째로 사실로 받아들이라 강요할 필요는 없다. 폭로의 과잉이 주는 스트레스 못지않게 피곤한 것이 바로 사실과 허구의 지위가 뒤바뀐 이상한 나라의 주민으로 사는 일이다.

출처


역시, 진중권 선생님에겐 트위터보다는 블로그가 훨씬 더 어울린다. 하지만 나꼼수는 어차피 돌격대. 돌격대에게 뭔 말을 한들, 돌격대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뭔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가끔, 나꼼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깔린 욕망이 읽힐때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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