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at Zagni

한 잎의 여자 2 - 오규원 본문

읽고보다/메모하다

한 잎의 여자 2 - 오규원

자그니 2001. 12. 5. 02:09
나는 사랑했네 한 여자를 사랑했네. 난장에서 삼천 원
주고 바지를 사입는 여자, 남대문 시장에서 자주 스웨
터를 사는 여자, 보세가게를 찾아가 블라우스를 이천
원에 사는 여자, 단이 터진 블라우스를 들고 속았다고
웃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순대가 가끔 먹고 싶
다는 여자, 라면이 먹고 싶다는 여자, 꿀빵이 먹고 싶
다는 여자, 한 달에 한두 번은 극장에 가고 싶다는 여
자, 손발이 찬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리고 영혼
에도 가끔 브래지어를 하는 여자.

가을에는 스웨터를 자주 걸치는 여자, 추운 날엔 팬티
스타킹을 신는 여자, 화가 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여자, 팬티만은 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여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여자, 실크 스카프가 좋다는 여
자, 영화를 보면 자주 우는 여자,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는 여자, 더러 멍청해지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
네. 그러나 가끔은 한 잎 나뭇잎처럼 위험한 가지 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여자.




가끔 밤거리를 걷다보면, 많은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어둠 속에 가려진 불빛아래, 많은 사람들은
둘이란 공간 속에, 또는 사랑이란 이름 아래
서로 손을 잡고, 키스를 하며 거리를 걸어갑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몇일전 밤도 그곳을 거닐며, 갑자기
정말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세상에는 그런 사랑밖엔 없는 것일까요.
둘만 존재하고 둘만 사랑하는, 그런 사랑.
둘만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은 무시해도 되는, 그런 사랑.
서로를 안아야지만 확인할 수 있는 사랑.

그러다 그만 잠이 들었던 것일까요.
마로니에 공원 벤취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니
새벽이었습니다.

푸른 자욱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거리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움에 적셔진 몸을 부비며
그렇게 다시 거리로 한 걸음을 내딛을 때

문득, 미친듯이 그리웠습니다.

가난한 사랑 하나,
내가 보듬을 수 있는, 그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