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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품에, 그대 눈물을 - 이정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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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품에, 그대 눈물을 - 이정록

자그니 2003. 10. 26. 10:58

내 가슴은 편지봉투 같아서
그대가 훅 불면 하얀 속이 다 보이지

방을 얻고 도배를 하고
주인에게 주소를 적어 와서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거야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를 들이는 사이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를 부르면
봉숭아 씨처럼 달려나가는 거야

우리가, 같은 주소를 갖고 있구나
전자렌지 속 빵 봉지처럼
따뜻하게 부풀어 오르는 우리의 사랑

내 가슴은 포도밭 종이 봉지야
그대 슬픔마저 알알이 여물 수 있지
그대 눈물의 향을 마시며
나는 바래어 가도 좋아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그대 그늘에 다가갈 수 있는
내 사랑은 포도밭 종이 봉지야

그대 온몸에, 내 기쁨을
주렁주렁 매달고 가을로 갈 거야
긴 장마를 건너 햇살 눈부신 가을이 될 거야



영화 "파이란"을 보다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과 자신의 이름이
나란히 박힌 주민등록등본을
가만히 쳐다보다 웃음짓는 장면

사랑,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냥 당신이 있어서, 참 좋다는.
우리가 같은 주소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따뜻하게 부풀어 오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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